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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4. 키스데이 기념
토도 진파치는 초조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님이 앞에 있는데도, 아니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고등학교 3학년의 마지막 인터하이에서 제 학교가 우승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만큼이나 그랬다. 사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지만 어찌되었든 계획이 틀어졌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이니 그 근본은 같다. 토도는 애타는 눈빛으로 맞은 편의 마키시마를 바라보다가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안타깝게도 토도의 마음 속 외침은 잡지에 집중하느라 30분째 고개도 들지 않고 있는 제 연인에게 닿지 못했다.
발단은 신카이 하야토의 한마디였다. 어제는 자전거 경기부 녀석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그래봤자 우연히 후쿠토미를 만난 제가 생각난 김에 급하게 조성한 자리라서 아직까지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만 전화를 돌렸으므로 결국에는 늘 보던 그 얼굴들이었지만. 모두 모인 시각은 꽤 늦은 저녁이어서 아직 학생인 마나미와 이즈미다는 곧 집으로 돌아갔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예의바른 이즈미다의 인사마저 가게 밖으로 빠져나가고 잠시 내려앉은 침묵 위에 입을 연 것은 언제나처럼 토도였다. 그러고보니 내일 마키쨩 귀국일이네.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아라키타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아직도 그렇게 좋냐. 징글징글한 새끼. 부러우면 너도 애인 만들던가. 아라키타식 욕설 화법에 이미 익숙해질 데로 익숙해진 토도의 놀림에 주먹이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포크로 샐러드를 뒤적거리던 신카이의 목소리가 그대로 토도의 머리를 강타했다. 6월 14일이면 키스데이네. 그 따위 기념일은 도대체 왜 알고 있는거냐며 저에게로 향하던 구박의 화살을 신카이에게로 돌린 아라키타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키스데이라니, 그런 기념일도 있었단 말인가. 그 후 토도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모임이 어떻게 끝났는지,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도 기억에 없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고 마키시마가 공항에 도착하기까지는 3시간 정도가 남아있었으며 둘이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까지는 4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키스데이라니. 이불을 개고 방 한가운데에 정자세로 앉아 토도 진파치는 고민했다. 마키시마와 교제를 시작한지는 거진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 둘이 한 일이라고는 통화와 통화, 그리고 통화 뿐이다.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있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얼마 있지 않아서 마키시마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토도는 서로 살을 맞대는 행위 없이도 제 사랑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천천히 해도 된다. 전통있는 여관집의 아들은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연애에 있어서는 보수적이었다. 마키시마를 만나기까지 한번도 애인이 없었던 전적도 한 몫했다. 하지만 이쯤되니 조금 불안해지는 것이다. 저와 마키시마는 교제하는 사이지만 기껏해봐야 손 밖에 잡은 적이 없고, 일년 간 마키시마는 개방적인 사람이 천지인 외국에 있었다. 키스데이라는게 영국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마키시마가 알고 있다면. 내심 기대하고 있다면. 제가 그 기대를 져버리게 된다면? 물론 마키시마는 그런 이유로 토라진다거나 할 위인은 아니지만 문제는 토도 진파치 자신이었다. 토도는 마키시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나자마자 입술부터 들이미는 것은 실례일 것이다. 애초에 마키시마가 이런 기념일에 대해 알고있는지도 불명확하니 우선은 뭐라도 먹으면서 낌새를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리고 일어섰을 때에는 이미 출발 예정 시각에서 한참이나 지나 있었으므로 토도는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하며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래 그래서 근처 카페에 들어오긴 했는데. 토도는 절망했다. 마키시마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든 잡지의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키스데이 특집이라는 글자가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망연한 얼굴로 잡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자 공항에 있던 서점에서 샀다며 마키시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삼십분 째 한마디 없이 잡지를 탐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라비아가 아닌게 다행일까. 학교에서 그 쪽에 관련된 공부를 한다더니 아마 패션잡지인 모양이다. 전에는 그저 미묘하다고만 생각했던 스타일도 조금 바뀐 것 같고. 옷이나 패션에는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니 하루종일 그 놈의 기념일 생각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지라 마키시마를 정면에서 제대로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토도는 미안해졌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서운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런 특집의 잡지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아하니 어쩌면 마키시마도 토도 자신처럼 스킨쉽에 큰 의의를 두고 있지 않을 수도. 그제서야 토도는 일년 여만에 보는 제 연인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머리는 더 길어진 것 같다. 더웠는지 깔끔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채의 길이가 꽤 되었다. 피부는 여전히 하얀 편이고. 영국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다던데 살이 더 빠진 것 같기도 하다. 타인이 다가가기 힘들었던 예전에 비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아마도 외국에서 처음 보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혀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화술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그래야 내 마키쨩이지. 알 수 없는 뿌둣함을 느끼던 토도의 눈길이 멎은 곳은 입술이다. 색이 옅고 얇은 입술이 빨대를 오물거리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순식간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겨우 잊었나 했는데! 끙, 앓는 소리에 마키시마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부터 왜 그러니 토도.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턱을 괴고 저를 쳐다보는 마키시마에게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것은 으, 아, 그러니까, 같은 의미없는 단어들 뿐이었다. 마키시마는 무심한 눈으로 저를 한 번 잡지를 한번 보더니 갑자기 쿠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 얼굴이 그렇게 웃긴거야 마키쨩? 아니, 아니란다. 잠깐 이리 와보렴. 의아한 얼굴로 상체를 기울이자 마키시마의 얼굴이 그 만큼 가까워졌다. 속눈썹 갯수도 셀 수 있겠다 싶을 만큼 가까워 졌을 때 입술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닿아 토도는 다가가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키시마의 입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토도, 너 여태 이거 의식하고 있던 거지?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마키시마가 잡지의 표지를 가리켰지만 토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세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진 토도는 제법 우스운 모양새였지만 마키시마에게 제가 무슨 행동을 저질렀는지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치켜올라갔던 입꼬리는 얼굴이 붉게 물들어감에 따라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고 결국에는 오른손에 의해 가려졌다. 그 즈음 토도는 정신을 차려서, 입을 막고 빨개진 얼굴을 한 채 안절부절하는 마키시마에게 소리쳤다. 마키쨩 기다려줘! 키스는 꼭 내가 먼저 할 테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너 사형!!
2014.06.08. 마키 상처 치료해주는 토도
마키시마의 다리가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순간이었다. 상대와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맞춘다는 기본적인 예의를 꽤 잘 지키는 편이었던 토도는, 그래서 레이스가 끝난 뒤의 제 라이벌의 다리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에게 말을 걸기 바빴던 탓이다. 애초에 평소에 아무 이유 없이 남의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변태들이나 할 법한 행동따위 할 이유도 없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랬던 과거의 제 자신에게 할 수만 있다면 주먹을 한 대, 아니 여러대를 날려주고 싶었다. 말로만 챙겨주면 뭐해. 직접 몸 상태를 체크해줬어야 했는데! 토도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져서는, 입에 빨대를 물고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마키시마에게 마키쨩,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 소리친 후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이번 힐클라임 대회가 열린 곳이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 천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편의점이나, 아니면 약국을 찾아 언덕을 도로 내려 가야했을 지도 모르니. 반창고와 연고, 생수를 계산한 점원이 봉투에 담아주겠다고 했지만 토도는 그 짧은 시간마저 아까웠으므로 손을 휘휘 내저어 거절하고는 품에 그것들을 한아름 안은 채 편의점을 나와 마키시마에게 직행했다. 마키쨩 일단 앉아봐. 여전히 어리둥절한 마키시마는 뭘 하려는 거니, 물으면서도 순순히 풀밭에 주저 앉았다. 토도는 조금 전까지 흥분해서 왁왁거리던 것과 달리 진지한 얼굴로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마키시마의 긴 다리를 덥썩 붙잡고는, 다른 한 손으로 그 위에 생수를 들이부었다. 토도! 갑자기 맨다리에 찬 물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란 마키시마가 언성을 높였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물병의 절반을 비워냈다. 그리고는 그제서야 마키시마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소독했어. 하? 그게 무슨 소리니? 마키쨩 다리, 상처 투성이잖아. 진즉에 알아챘어야 했다. 자신은 낙차하지 않는 이상 외상을 입는 일은 거의 없다. 필요 없는 움직임은 최소로 하는 제 주행 방식 덕이다. 하지만 마키시마는 저와 달리 몸을 좌우로 크게 기울이는 댄싱을 한다. 그러면 다리가 체인이나 바퀴에 닿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토도는 다시 시선을 내려 야외활동을 하는 남고생의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만치 하얀 마키시마의 다리를 보았다. 양쪽 모두 체인에 쓸린 상처가 즐비하다. 그저 빨갛게 변하기만 한 것도 있지만 살갗이 벗겨져 핏방울이 맺힌 것들이 더 많았다. 방금 전 물로 씻어내지 않은 쪽은 곳곳에 검은 기름이 얼룩덜룩 묻어있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심장에 아프게 와 박힌다. 왜 자기 몸을 더 소중히 하지 않아 마키. 안타까움을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에 마키시마가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어쩔 수 없잖니. 다른 경기도 아니고. 마키시마는 뒷말을 흐렸지만 토도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평범한 레이스가 아니라 자신과의 승부였기 때문에. 상처가 나고 말고를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토도는 입을 다물었다. 마키시마는 말주변도 없는 주제에 가끔 이렇게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 이유라니 치사해 마키쨩. 그럼 내가 화 낼 수가 없잖아. 작게 투덜거렸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올려다본 곳에는 제 눈을 피해 애써 다른 곳을, 무언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라도 벌어진 양-그 쪽에는 화장실밖에 없는데도- 노려보고 있는 마키시마가 있었다. 하지만 끝이 발갛게 달아오른 귀만은 어떻게 하지 못해서, 토도는 결국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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