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마키. 21st century magic? 上

1.

 하코네 산의 정상에는 귀신이 나타난다. 근래 들어 하코네 학원의 학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지역마다 으레 하나 둘 쯤은 있을 법한 괴담이었다. 본디 산이란, 특히 하코네처럼 큰 산은 인간에게는 미지의 구역일 수 밖에 없어서 각종 전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하코네 또한 예외없이 별의 별 요괴들이 등장하는 전설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학원생들에게는 이미 익숙할, 어쩌면 머리가 커서 더 이상 믿지 않을 그런 괴담이 이제야 도는 이유는 한 달 전, 목격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초의 한 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3, 4일에 걸쳐 여러 명이. 다수의 목격자라는 든든한 아군을 뒤에 지고서, 소문은 점점 제 몸뚱아리를 부풀려갔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지는데, 눈치채고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는 흔한 이야기였지만 어떤 여학생이 나무들 사이에서 언뜻 남자의 실루엣을 보았다는 것을 시작으로 눈이 마주치면 소름 돋는 미소를 짓는다던가, 그 미소를 본 사람은 숲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던가 하는 것들이 덧붙여졌다.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목격담이 학교를 한 바퀴 돌고 난 이후에는 그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으나, 대체적으로 어차피 귀신인데 여자고 남자고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여론이 강했으므로 소문 속의 그것은 성별이 모호한 채로 귀신으로만 불리었다.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코네 학원 싸이클부 1학년 마나미 산가쿠는 이제 막 그 이야기를 듣고 온 참이었다. 원체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어서 최근 괴담이 유행하고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소꿉친구인 미야하라가 산에서 귀신이 나온다니 자전거 타고 그 쪽으로 갈 생각일랑 하지도 말라며 잔소리를 하는 덕에 알게 된 것이다. 부활동조차 가지 못하게 하려는 그녀를 겨우 떼어내고 부실에 도착하니 다른 선배들은 온데간데 없고 산신이라 불리우는 선배 한 명만 덩그러니 라커를 정리하고 있다. 산신, 산신이라. 무언가 떠오르자 마나미 산가쿠의 입은 언제나처럼 아무런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그의 뇌리를 스친 그것을 그대로 공기 중으로 뱉어내었다. 하코네 정상의 귀신 말이에요,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실에 오는 길에 여학생에게 받은 간식을 라커에 넣고 있던 토도 진파치는 등 뒤에서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갑자기 그건 왜? 글쎄요, 우리 학원에서 하코네 산의 정상에 가장 많이 올라가 본 사람은 선배니까, 왠지 잘 알 것 같아서? 그리고 산신이잖아요. 후배의 맹한 대답에 짧게 웃은 토도는 라커 문을 닫은 후, 늦은 오후의 해가 걸려있는 창 밖의 하코네 산을 바라보았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은 좀 너무한 것 같다. 


 토도 진파치가 남자를 만난 것은 대략 한 달 전의 일이다. 유난히 해가 뜨거운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라고 했으나 토도는 아랑곳않고 자전거를 끌고 기숙사를 나섰다. 그리고 날씨 때문에 야외 훈련은 없다는 후쿠토미의 지시를 다시 제게 상기시키는 1학년 후배에게 산신이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산을 오르는 법이다! 하고 호기롭게 외친 것이 무색하게도 중반 즈음에 다다라 결국 자전거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땀이 비오듯 흘러서 더 이상 타다가는 탈수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뒤돌아 가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서 토도는 결국 제 자전거를 끌고 되도록이면 짙은 그늘 아래만 골라 천천히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슬슬 걷는 것도 지쳐가는데, 시야에 누군가 나타났다. 펄펄 끓는다는 말이 더없이 어울릴, 땡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아스팔트 도로 한가운데에, 등을 덮는 긴 비단벌레빛 특이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 팔다리가 이상할 정도로 길고 말랐다. 짧은 소매의 티 덕에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하얬고,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그는 전체적으로 기묘한 분위기를 띄었다. 우선 바람 한 점 불지않을 뙤약볕 아래에서 조금씩 흩날리는 머리칼이 그러했고, 호기심에 곁눈질로 본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 그러했으며, 결정적으로 제가 계속 빤히 바라보며 곁을 지나가도 아랑곳 않고 저 멀리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미동조차 않는 태도가 그러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크게 이상할 법한 일이 아니기는 했지만 언제나 타인의 수많은 시선들을 받는 것에 익숙해진 토도 진파치에게는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시선이 일방향이라는 것이 퍽 생소한 일이었는지라, 그는 남자를 등지게 된 참에 더 이상의 관심은 떨치고 제 갈길을 가려던 결심을 철회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입가 말고 눈 밑에도 점이 있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는데,

"…쇼옷,"

아. 이상한 감탄사.



2.

 마키시마 유스케는 인간이 아니다. 그래, 인간이 아니라 무엇이냐 묻는다면은 그는 마키시마 유스케다.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그는 그 스스로가 하나의 종족이었다. 그에게는 피를 나눈 그 무엇도 없었으므로 그는 말 그대로 유일한 존재였다. 오래 전, 마키시마가 아직 인간이었을 시절에는 그에게도 피붙이라는 것이 존재했었지만 그건 정말로 옛날의 일이므로 기실 마키시마는 그들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생김새나 성격, 저가 그들과 어떻게 지냈었는지 등은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었다. 영생, 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질기고 긴 목숨을 얻은 것과 기억력은 별개인 모양이라고, 살아온 햇수가 세 자리가 되었던 날이 까마득해졌을 즈음 마키시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시간을 살아오며 마키시마는 저를 지칭 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그나마 가장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는 자신을 마법사라 부르기로 했다. 마키시마는 수많은 인간의 단어들 사이에서 제 특징과 가장 가깝다며 그것을 꼽았지만 사실 그것은 언젠가 그를 만난, 혹은 멀리서 바라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수많은 상상들이 더해지고 빼지고 하며 생겨난 단어였으므로 그를 가리키기에 더없이 적합한 말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키시마 유스케는 마법사였다. 다만 그가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누구도 그에게 정체를 물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나가와에는 정말 아주 잠시만 머무를 예정이었다. 천성이 산을 좋아하는데다가, 최근에는 온천에 흥미가 생겨서 일본에 들른 김에 하코네에 가보지 않을 수는 없지, 하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랬는데 한 달이나 눌러 앉아 있을 줄은. 마키시마는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첫날 만난 인간 꼬마 때문이다. 토도라고 했었던가. 인간의 나이로 치자면 성인에 가까운 나이겠지만 거짓 조금 보태서 이 하코네 산과 나이가 엇비슷할 마키시마의 입장에서는 갓난아기나 다름없다. 그 날은 정말 살인적으로 더웠고, 제게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재주는 없었기 때문에 잠깐 바람이나 쐬려던 찰나 그와 눈이 마주쳤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통성명은 어느새 끝나있었고, 심지어 괜찮다면 정상까지 같이 걷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마키시마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게 이 귀찮은 인연의 시작이 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첫 날은 그것을 제외하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둘은 곁에서 함께 걷기는 했지만 더 이상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고, 정상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이상한 동행도 금방 끝이 났다. 문제는 그 이후로, 마키시마는 다음날 정상에서 또 한 번 토도를 만났는데 토도는 그것을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한 번 보았던 사람이라고, 반갑게 인사한 토도는 저에게 혹시 내일도 여기에 올 예정이냐고 물었더랬다. 사실 마키시마는 앞으로 며칠 간은 해가 지면 넓은 산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다니다가 해가 떠 더워질 즈음이 되면 그늘과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저녁이 될 때까지 그림이나 그리며 머무르는 생활을 유지할 생각이었으므로 엄밀히 말해 다른 곳에서 이 곳으로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할 만한 말주변을 가지고 있기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셋째날에 토도는 마키시마의 나이를 물었다. 이미 세는 것을 포기한 지가 오래라 마키시마는 좋을 대로 생각하라는 이유에서 뭐, 보이는대로라네. 하고 적당히 대답해 주었다. 그 다음 토도는 저녁은 무엇을 먹었는지를 물었다. 마키시마는 별 생각없이 먹지 않았노라고 답했다. 그러자 토도는 크게 놀라면서 미네랄은 골고루 섭취해햐 한다는 둥 식사를 거르면 건강을 해친다는 둥의, 도저히 그저께 만난 사람에게 할 만한 것은 아닌 내용의 잔소리들을 늘어놓다가, 내일은 제가 저녁을 싸올테니 딱 기다리고 있으라며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하코네를 떠날 예정이었던 마키시마는 그에게 휘말려, 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식으로 출발 계획은 하루 하루 미루어져, 결국 한 달이나 하코네에 머물고 말았다. 토도는 그 한 달간 지치지도 않고 매일매일 마키시마 몫의 저녁거리를 챙겨왔다. 활동하는 데에 영양소가 필요한 몸이 아닌지라 식사는 기호에 불과할 뿐인데도 마키시마는 그 정성을 생각해 귀찮음을 무릅쓰고 최대한 맛있게 먹어주려고 노력했다. 토도 진파치는 생각보다 말이 많은 남자여서, 마키시마는 만난 지 일주일도 안되어 그가 근처 하코네 학원 소속이고, 그 곳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싸이클 부에서는 산신이라고 불리우는 에이스 클라이머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매일 이 곳 까지는 개인 연습을 핑계 삼아 온다고 했다. 그냥 산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마키쨩을 만나는 편이-토도는 마키시마에게 나이를 물어본 다음 날 부터 그를 마키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실로 엄청난 친화력이 아닐 수 없었다.-더 좋거든.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내뱉는구나. 토도와의 대화에서 웬만하면 입을 열지 않는 마키시마의 첫 마디였다. 말 수가 적은 마키시마 덕에 신상을 잔뜩 털린 토도였지만, 그에게도 아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키시마가 낮 동안 가장 그늘이 짙은 곳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위에 취미가 그림인 사람은 없어서 신기한 마음에 그 동안 그린 것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마키시마는 어차피 봐도 모를 거란다, 하며 흔쾌히 그에게 노트를 넘겨주었고 토도는 그의 그림을 보고 과연, 감탄했다. 마키시마의 패션 센스만큼이나 난해한 그림을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었기 때문에.

 마키쨩-!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목소리에 마키시마는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기는 소리지만 관절이 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레팬과 져지를 입은 토도의 손에는 어쩐 일인지 오늘의 저녁이 들려있지 않았다. 네가 어쩐 일이니, 빈 손으로 여길 다 오고. 무슨 일 있니? 마키쨩, 그게 문제가 아니야. 요즘 학교에 산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쫙 퍼졌는데, 그거 아무래도 마키쨩인 것 같거든? 나무들 사이에서 머리 긴 남자가 쳐다본다는데 그게 마키쨩이 아니고 누구겠어! 토도 외에 다른 인간을 만난다면 지금보다 더 성가신 상황이 생길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키시마는 어, 그거 아무래도 나인 것 같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토도는 어지간히 흥분했던지 침까지 튀어가며 자기 일인데 어쩌면 그렇게 무심할 수 있냐며 저를 다그쳤다. 그러는 너야말로 네 일도 아닌 내 일인데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니? 묻자, 토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꽤나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연다. 그거야, 마키쨩이 귀신 같은 기분 나쁜 걸로 오해 받으니까. 장난기가 쏙 빠진 목소리는 제법 남자다웠다. 뭐야,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꽤 좋은 녀석이잖니. 그러고보면 아무 연고도 없는 제 식사를 한 달이나 꼬박 챙긴 것도 그렇다. 마키시마는 저보다 한참 어린 이 인간꼬마가 새삼 다시 보이는 듯해 조금 웃었다. 난 별로 그런 데에 신경안쓰니까,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네. 웃음기가 어린 마키시마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토도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참, 평소의 그 하이텐션이 맞는지. 어이, 토도. 다시 부르려는데, 토도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저기, 마키쨩.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물어보지 못할 것 같아. 사실 나, 마키쨩이 보통 사람들이랑은 다르다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 그렇다고 귀신이라는 건 아니야. 이렇게 만질 수도 있는걸. 그러니까, 내가 묻고 싶은건. 


"마키쨩의 진짜 정체는 뭐야?" 


마키시마 유스케는 마법사다. 스스로 그렇게 칭하기로 했었다. 다만 그 단어를 제 입 밖으로 내 본 적은 없어서, 그는 자신을 무어라 부르기로 했다는 사실을 거진 반 쯤은 잊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키시마 유스케는 어린 인간의 물음에 조금 주저했다. 제 정체를 밝히는 데에 거리낌은 없었으나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던 탓이다. 초조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인간 앞에서 마키시마는 열심히 기억을 뒤졌다. 뭐였더라. 마, 로 시작하는 거였던 것 같은데. 아, 그래.


"마법사,라는 거잖니."   


-

아직 보고싶은 장면은 쓰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편ㄴ이 있음. 언제 올라올진 모르겠지만(쑻

토도는 마키 앞에서면 평소보다 더 하이텐션~ 마키는 모름모름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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