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도마키 감정동기화
- PN/2
- 2014. 5. 24. 22:17
토도가 LS 마키가 PS
열아홉 살의 여름, 마키시마 유스케의 각성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보통 각성이 일어나는 것은 열다섯 살에서 열아홉 살까지의 청소년들에게로, 대부분은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즈음이면 이미 한번 씩은 각성을 겪고 파트너를 구해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마키시마의 가족들은 대체로 각성 시기가 늦었던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아홉이 될 때까지 각성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친척들까지 포함하여 마키시마 유스케, 그가 유일했다. 다만 사람들 중에는 간혹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체질도 있는 모양이라 마키시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발작-학생들은 각성이라고 하기 보다는 발작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때문에 괴로워하는 몇몇의 주변인들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던 것 같다. 2학년이 끝날 때 즈음에는 혹시나 돌아올 새 학기에 각성이 일어나려나 싶었지만 7월 7일 제 생일이 지날 때까지도 아무 변화가 없어서 마키시마는 해가 바뀌는 대로 가까운 센터에 등록을 하러 갈 예정이었다.
한여름치고는 바람이 선선한 주말이었다. 인터하이 이후 오랜만에 달리지 않겠느냐며 토도에게 전화가 와서 마키시마는 아침 일찍 제 로드를 끌고 집을 나섰다. 토도와는 소호쿠와 하코네의 중간 정도 되는 지점에서 만났다. 간만에 만난 토도는 여전히 말이 많고 자신에 차 있는 모습이라 조금 웃었던 것도 같다. 클라이밍을 할 만한 언덕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꽤 되어서 둘은 그 곳까지 가볍게 페달을 밟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토도가 떠들고 마키시마가 맞장구를 쳐주다가, 어떻게 하면 거기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엉뚱하게 토도가 제 자랑으로 넘어가면 타박하는 식이었다. 마키시마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 건 토도가 한창 제 팬클럽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토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다물었다가, 저기 마키쨩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하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마키시마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려는데 또 다시 투둑, 하고 눈물 몇 방울이 핸들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마키시마는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마땅히 슬플 일이 없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와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시야가 흐려져 자전거의 형체조차도 분간하기도 힘든 와중에 조금 전의 물음 이후로 한 마디도 없던 토도가 갑자기 마키시마를 안아왔다. 놀라서 딸꾹질을 했었나. 확실하지 않지만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토도의 팔이 제 몸에 닿음과 동시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서 그렇게 안정적인 기분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토도는 눈물이 이미 그쳤음에도 마키시마의 훌쩍임이 멎을 때 까지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제 괜찮단다. 응, 저기 혹시 마키쨩 아직까지 각성 일어나지 않았었어?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제 행동은 언젠가 들었던 1차 각성 시의 증상이었다. 결국 저는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체질이 아니었던 셈이다. 마키시마는 일말의 아쉬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센터에 들르면 파트너를 등록받을 수 있으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토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랑 파트너, 맺을래? 나도 며칠 전에야 각성이 일어나서 아직 없거든. 그리고 그 날 이후, 토도 진파치와 마키시마 유스케는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졸업하기까지 반년은 둘 사이의 무시하지 못할 물리적 거리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센터에 토도와 파트너 등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마키시마는 어쩌자고 그렇게 멀리 사는 아이와 파트너를 맺었냐며 부모님께 크게 한소리를 들어야했다. 2주 이상 파트너를 만나지 못하면 다시 발작이 오기 때문에 토도와 마키시마는 매 주 주말마다 마키시마에게 각성이 일어났던 그 곳에서 만나 로드를 탔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나지 못할 일이 생겼을 때에는 휴대폰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평소에 토도가 뻔질나게 전화하던 것은 다 이 때를 위한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둘은 방을 하나 구해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마키시마는 토도의 본가가 전통있는 여관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데에 엄할 것 같아 조금 걱정했지만 토도에게서 가업은 제 누나가 있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미련없이 걱정을 거두었다.
마키쨩. 왜 부르니. 오늘 비 온대. 바닥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토도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마키시마와 오랜만에 클라이밍을 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로드레이스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경기이고 날씨를 예측하기 힘든 만큼 훈련이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고 해야겠지만, 즐기기 위해서 로드를 타러 갈 두 사람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힘들게 언덕을 오를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마키시마가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 된통 고생했었기 때문에, 토도는 전보다 더 마키시마의 건강관리에 예민한 상태였다. 그냥 나가면 되지 않니. 안돼 마키쨩 그러다가 또 감기 걸릴라.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오늘 뭐하지? 마키쨩 뭐 할래? 마키시마는 무심한 눈으로 읽고 있던 잡지를 들어보였다. 뭐? 그라비아? 그럼 나는? 원한다면 같이 봐도 된단다. 마키시마는 잡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토도는 상체를 세워 질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무릎걸음으로 슬금슬금 마키시마 옆에 다가와 왼팔로 그의 마른 어깨를 그러안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마키쨩, 나는 여기 모델들 보다는 마키쨩이 훨씬 좋다니까. 귓가에 낮게 소곤대는 목소리에도 마키시마가 아랑곳 않자 이내 다른 손으로 책장을 잡고 있던 길고 마른 손가락과 제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낀다. 제 취미생활을 방해하는 심술에 마키시마는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손 잡고 있으면 마키쨩 마음이 나한테로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야. 마키시마는, 기분이 아니라 정말 그런거잖니, 하고 한 마디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마키시마 유스케가 감정이 흘러넘치는 쪽인 반면, 토도 진파치는 감정이 부족한 쪽이다. 마키시마도 처음에는 당연히 토도가 과하게 넘치는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날 그의 성향을 알게 된 이후로 주욱 가까이에서 그를 바라보니 도대체 제가 왜 처음에는 그런 한심한 오해를 했나 싶을 정도로 토도는 냉정했다. 늘 제 잘난 점을 줄줄이 읊어대는 것은 정말 본인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지구본을 보고 둥글다고 하는 것처럼,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언젠가 토도와 같은 하코네 학원 자전거 경기부였던 아라키타 야스토모에게서 그가 부주장이었던 이유는 후쿠토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가장 냉정을 유지 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그대로 생각을 굳혔다. 그러나 그렇다고 토도가 저를 사랑하는 마음에 부족함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토도와 살을 맞대고 있으면, 그의 감정 또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마키시마는 토도가 저의 모든 감정을 끌어모아 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성향 상 어쩔 수 없이 그 절대치가 마키시마보다 적을 수 밖에 없어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마키시마는 언제나 그 작은 감정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마키시마 유스케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넘쳐흐르는 애정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고, 과하다고 생각되는 제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토도의 적당한 서늘함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마키쨩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란다. 마키시마는 고개를 젓고는, 얽힌 손가락들에 조금 힘을 주며 토도의 어깨에 기대었다. 좋아, 오늘은 집 안에서 너 하자는 대로 놀아줄테니 저녁 식사 준비와 설거지 모두 네가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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