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 가(家)는 마을에서 제법 큰 집에 속했다. 달리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정말로 집이 차지하는 땅이 넓었다. 아직
학교에 채 들어가지 못한 나이의 어린애들 사이에서는 마을 뒤의 야트막한 산까지도 전부 사와무라의 땅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뒷산에서 놀다보면 늘 그 집의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봄에는
날이 좋으니 꽃구경을 간답시고, 여름에는 사슴벌레를 잡느라, 가을에는
떨어진 밤이며 감을 줍는다는 핑계로 하루 온 종일을 산에서 보내다 보면 해가 떨어지기 전 한 번은 꼭 단정하게 기모노를 차려 입은 할머니가 한
손으로는 저들 또래의 남자 아이 손을 붙잡고,-소년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래서 스쳐 지나가며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그 애의 이름이 사와무라 다이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이치(大地)라니, 과연 사와무라 가의 외아들다운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손으로는
예쁜 색의 보자기로 싸여진 보따리를 쥔 채로 산을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와무라의 할머니는 늘
동네의 어떤 어른보다도 아이들을 다정히 대했지만 산 속에서 마주치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알 수 없는 고요함을 두르고 있어 쉬이 말을 걸지 못했는데, 그들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그 고요함이 경건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에는 차마 어디를
가는지, 보따리 안에 든 건 무엇인지 묻지 못하고 다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 사와무라가에서 산을 빌려 쓰고 있으니 산신에게 인사를 하러 가는 것이라는-으로
그 사이에 생겨난 공백을 메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문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뒷산은 물론 사와무라 가의 소유는
아니었으나 어린 사와무라와 그의 조모는 정말로 그 산에 산다는 신에게 공양을 하기 위해 매일 산을 올랐다. 소년이
제 할머니에게 듣기로, 그 신은 대대로 사와무라의 이름을 가지는 자들을 보살펴 온 분으로 소년의 아버지가
어릴 때에도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따라 산을 올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시간이 흘러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그런 것은 미신이라며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의 늙은 어머니는 그 대신 늘 지극한 정성으로 깊숙한
곳에 숨겨진 작고 볼품없는 사당을 찾았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이 집에 처음 시집 왔을 때는 말이다, 집안 사람들
모두가 일주일에 한 번은 이 곳을 찾았단다.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기 힘드니 집 안에 제사단을 만들어두고
공양을 했지. 선조 때부터 우리를 돌봐주셨던 신령님이라는데 사람들이 이젠 그런 것은 믿지를 않으니, 할미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매일 와서 인사를 드리는 것 뿐이구나. 네가 아직 말도 떼지 못한 아기였을 때 열병에 숨이 넘어갈 뻔했던 너를 살려주신 것도 이 분이시다. 할미가 죽더라도 너는 꼭 지금처럼 이 곳을 찾아와야 한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죽음이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였지만 어린 사와무라는 제 손을 덮는 주름진 온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사와무라 다이치는 제 아버지처럼 미신을 믿지 않는 소년으로 자랐다. 아주 시골에서도
농사일을 위해 기계를 가져다 쓰는 세상이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몰랐다. 할머니를 따라 공양을
가는 일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만두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에는 그 때까지도 매일 산을 오르던 제 조모에게 몸도 성치 않으신데 그만두시는 게 어떻겠느냐며 넌지시 말을 건네 보기도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노인의 세월이 담긴 단호한 고갯짓 뿐이었다.
그랬던 소년이
열 일곱이나 나이를 먹었음에도 제 발로 산을 오르는 것은 그 일을 마치 숙명인 양 행해오던 늙은 여인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와무라 가의 최고 연장자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일주일 간을 병석에 누워 지내다가 바로 어제 숨을 거두었는데,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직전 아주 옛날 열 살 남짓했던 손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을 꼭 잡았고 그 순간
사와무라 다이치는 그것이 제 조모의 무언의 부탁, 다시 말해 유언임을 깨달았다.
사와무라는 마음
속으로 제 기억력에 감탄을 표했다. 그도 그럴게, 마지막으로
이 곳에 다녀간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한 번도 길을 잘못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고 볼품없는 사당은 조금 더 낡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기억 속의 모습과 똑같았다. 주위의 나무들은 그가 꼬마일 적보다 조금 더 빽빽하게 공간을 메우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이 제가 수 년간 발길을 끊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며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실재 여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게 –심지어
사와무라는 그 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바쳐야 할 화과자 세트는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채
감상에 젖어있던 그 순간, 사와무라는 갑작스레 목덜미에 느껴지는 한기에 섬찟해져 몸을 떨었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는데다가 계절은 초여름, 기분 좋은 산 바람이라
하기에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쯤 되면 미신을 믿지 않는 소년이래도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돌처럼 굳은 채로 당장 무얼 해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나,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 곳을 벗어난다. 둘, 고개를 돌려 무서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와무라는, 대부분의 겁에 질린 십대 아이들이 그러하듯 줄행랑을 선택했으나 대부분의 겁에 질린 사람들이 그러하듯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산을 내려가려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말인즉슨, 길은 작은 사당의 맞은 편에 있었고, 사당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간에 뒤를 돌아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와무라는 도망치기 위해 몸을 틀었고, 몸을 틀기 시작한 순간 제가
범한 오류를 깨달았고, 그렇지만 아쉽게도 눈을 감는 타이밍은 한 발 늦어서, 제 뒤에-그러니까 지금은 제 앞에-
무언가 희끗한 형체가 서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은 모른 척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초여름, 아직도 중천에 뜬 해가 따가운 직사광선을 내리쬐는 가운데 사와무라 다이치는 제가 인간이 아닌 것과 마주하고
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