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가/다시

스가른 전력 60분. 주제 '비 온 뒤 맑음'






다이치와 헤어진 지 두 달이 지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 애와 나는 지나치게 잘 맞아서, 불과 지난 겨울까지만 하더라도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이별 이야기 같은 건 다 남들 일인 줄로만 알았다. 이제 와서 말하기엔 조금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 해가 바뀌던 날 밤에 우리는 애들을 입양할 계획까지 세웠었다. 물론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좋다던 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오죽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라 하면 언제나 고등학교 시절 나와 그 애와 함께 배구를 했던 녀석들을 말했다. 그 녀석들은 이미 우리를 금슬 좋은 부부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와 다이치가 그런 사이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 받을게 뻔하다고. 다이치가 내놓은 의견이었지만 그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더 이상 연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맞았다. 얼마나 의견 일치가 잘 되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줬던지 이별을 고하던 그 순간조차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서 아침이랍시고 후라이팬에 대충 구워낸 토스트-토스트기를 사고 싶었지만 자취하는 대학생에게 돈은 언제나 부족한 존재다.-를 씹는 다이치, 거의 다 먹어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밖에 남지 않은 버터를 손톱만큼 덜어 구석이 조금 탄 빵 위에 펴 바르다가 문득 이별을 고하는 나.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래, 태연하게 대답하며 입가를 닦는 다이치. 그 애와 내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함께 노후 계획을 세우던 사이에서 다시 그냥 친구로 돌아가는 과정에 별스러울 일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 픽션에서는 이렇게들 프러포즈를 하던데 나는 왜 그 때 헤어지자는 소리를 했을까. 그 때의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고, 다이치가 어떤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받아들였는지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도쿄에서 미야기까지, 3년 째 계속 되는 장거리 연애에 지쳐서였을지도 모르지. 확실한 것은 내가 그 애가 싫어져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래, 하고 대답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그 애의 부드러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새삼 느꼈다. 현관문을 나설 때,

-이제 그런 사이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름 부르는 것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지?

 하며 까치집이 된 뒷통수를 애써 가라앉히려 하는 그 손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 이별은 그저 순리에 따른 해프닝이었던 것일까? 단지 그렇게 되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고등학교 동창생의 사이로 돌아가야만 했나? 먼저 말을 꺼낸 나조차도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다이치는 어떻게 그런, 모두 납득했다는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을까.

 우리가 헤어진 날, 그러니까 다이치가 나를 만나러 그 애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도쿄까지 왔다가 하룻밤만에 다시 돌아가게 된 날, 도쿄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6월 중순이었으므로 장마의 시작이었다. 나는 좁고 습한 자취방에서 곰팡이들과 싸우며 그 애가 없는 날들을 흘려 보냈다. 그러다 보니 비가 그쳤고, 집 밖을 나설 때 접이식 우산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많아지더니 우산보다는 양산이 더 필요해 보이는 날들도 지나 어느새 해가 지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8월 말이 되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은 현관 신발장에 아직까지도 다이치의 신발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에 머물 때마다 곧잘 신고 다녔던 터라 뒷축이 눌리고 때가 타 회색으로까지 보이는 운동화 한 켤레를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집어 들었다. 내 기억들을 제외하면, 우리 집에 남아있는 다이치의 유일한 흔적이다. 누군가 왜 하필 오늘이냐고 물어보면 날이 좋아서라고 대답해야지. 어머, 스가와라 군 웬 운동화예요? , 낡아서 버리려구요. 오늘 분리수거 하는 날 아닌데? 그냥요. 볕이 좋길래.   

 오른손에 운동화를 들고, 왼손으로는 현관문을 밀었더니 예상대로 따가운 여름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만 생각한 것과 달랐던 점 첫번째는 문 앞에 서 있던 누군가 때문에 문이 전부 열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햇살을 뒤에 업은 그 실루엣이 내가 사랑해 마지 않던 익숙한 사람의 것이었다는 것.

웬 운동화예요?”

 실루엣이 물었다. 역시 내가 아직까지도 사랑해 마지 않는 부드러운 저음.

낡아서 버리려구요.”

오늘 분리수거하는 날 아닌데?”

그냥요, 볕이 좋길래.”

그래? 그럼 그거 버리고 새 신발 사러 가면 딱 좋겠네.”

 다이치가 웃는다. 내가 얼결에 현관 밖 복도로 발을 내딛자 그 애는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얼결에 발을 내딛은 현관 밖의 복도는 내 예상보다 더 환하고 눈이 부신 공간이라 나는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로 다이치를 바라봤다.

 지금 쯤이면 도쿄도 장마철 다 지났을 것 같아서 왔어. 올해는 곰팡이 청소 못도와줬네, 미안하다.

 아직 친구였을 때에도, 연인이었을 때에도, 그리고 다시 친구로 되돌아간 후에도 우리는 잘 맞았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란 정말 변하기 쉽지 않구나. 다이치의 말대로였다. 비는 그쳤고,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로 해가 쨍쨍한 날이 돌아왔다. 이런 날에는 새 신발을 사야지. 어쩐지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튀어나와서, 나는 그냥 웃었다. 다이치를 앞에 세워두고, 아파트 한 층이 떠나가라 웃어대다가 비어있는 왼손으로 비어 있는 그 애의 손을 찾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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